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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의 적과 마주서게 된 셈

동급의 적과 마주서게 된 셈


얼마 안 된 나중에 쫓던 사냥꾼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의 적수가 계 획 같은 것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그건 익히 알던 바와는 다른 생소한 일이었 다. 그것을 실제로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향유고래가 짜장 그렇게까지 생각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우리는 향유고래 수놈이 교미시기가 되면 싸움에 대비를 하며 격렬하게 결투를 벌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시기의 몇 주 동안 놈들은 극도로 공격적으로 변한다. 그 향유고래가 에식스 호를 경쟁 관계에 있는 수놈으로 여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놈 의 완전히 변칙적인 행동에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어쨌든 선원들은 우 열을 가릴 수 없는 동급의 적과 마주서게 된 셈이었다.


허먼 멜빌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했다. 에이햅이 고래에 대해서 복수심 을 갖는 것은 그가 은연중에 고래를 자신과 대등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증오를 통해서 그놈을 격상시키며 놈에게 지능과 의도를 부여해주고, 교활한 성격에다 나름의 자의식까지 부여해주는 셈이다. 모비 딕은 더 이상 물적 자원의 일종인 것이 아니라 에이햅 개인의 적수가 되었고, 이와 더불어 인간적인 특성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에 이햅의 바람이지 그의 선원들은 그렇게 받아들이려 하지를 않는다. 더는 동 물이 아닌 동물, 그렇다고 또한 진짜 사람도 아닌 것, 그러면 남는 것은 무엇 일까? 모비 딕은 틀림없이 악마 그 자체, 즉 신의 뜻에 따른 질서를 뒤죽박죽 으로 만들어놓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없어져야 한다.



아마도바로 이런 점에 노르웨이인, 아이슬란드인, 그리고다른나라사람 들이 고래에 대해 발전시켜온, 화해의 여지가 없는 증오심의 뿌리가 있을 것 이다. 누구든 인간에게만 허용된 무제한의 자기결정권을 함부로 넘보는 자 라면 일전을 불사하고 싸우고야 말겠다는 격앙된 고래잡이들의 열정은 매우 씁쓸한 인상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못된 돼지사육자라 하더라도 그가 키운 동물이 그보다 더 고귀한 존재라 고 생각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몇 톤씩이나 나가는 빛나는 자태를 지닌 이 동물은 아주 많은 호감을 받기 때문에 그 사냥꾼은 인간 말종으로 간 주될 수밖에 없으며, 분별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도 바다에서 추방되어야 할 존재라고 경멸을 받는다. 이상을 추구하는 광적인 이 세상에서 고래가 총 애를 받는 존재라면, 사람 자신은 단연코 악한인 것이다. 좋다, 일단은 맞다. 우리 모두를 악당으로 치부해버 리자면, 우리도 그럴밖에. 그럼 어차피 아무 도우리에게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을 테니까.


고래가 그렇게 격 렬하게 사냥 당하는 이유 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고래를 진화 양의 귀염등이라고 언명하며 녀석들의 운명을 선원들의 운명, 즉 고래 잡이가 아니 면 다른 일거 리가 없어서 아이들의 학비조차도 벌 수 없을 것 같 은 선원들의 운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는 것처럼 보 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래사냥꾼들이 자연보호자와 만날 때면 늘 전투적 인 행동으로 비화되고 마는 분노가, 그들의 가슴 속에 차 있는 분노가 어떻 게 설명될 수 있을까? 어떻게 가족보다동물이 더 소중할수가 있단 말인가? 전선이 경직되면 될수록 휴전을 모색하려는 어떤 토론도 불가능하게 된 다. 요즈음 양쪽의 신중한 대표자들이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타협을 모색 중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변함없이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두 견 해 사이에 중재가 이루어진다기보다는 각자 자신들의 진영에 초소를 세우고 공격용 사다리를 높이 세워 올리는 상황인 것이다. 한쪽은 작살을, 다른 쪽 은 펜을 갈고 있으며, 각자가 서로에게 최악의 것을 상정해대는 중이다.


에식스 호 이야기로 돌아가자. 고래의 공격에 당황한 채 여전히 선원들의 작은 나무보트는 대서양 위를 헤매는 중이다. 고래가 사라진 후 처음에 그들 은 사냥꾼도 아니고 또한 사냥감도 아니다. 하지만 서서히 허기와 고난이 닥 쳐오고 온갖 끔찍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관절은 부어오르고 근육이 위축되 는가 하면 의욕상실에다 두통도 엄습한다. 인간에게 내재한 동물적 본능이 아직은 잠잠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도록 잠만 자고 있지는 않는다. 그 본능 이 깨어난 것은 정확히 기진맥진했던 몇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모두에게 다 음과 같은 결정적인 의문이 제기되면서부터다. 살기 위해 저들의 고기를 먹 어도 되지 않을까? 또한, 그러고도 여전히 인간이란 말인가?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런 식인행위가 곧 살인을 뜻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쨌거나 사람들의 자기이해에는 깊은 균열이 생겨났다. 그 밖에 그들이 달 리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답이 나오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죽여서 그를 먹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모든 가치의 궁극적인 붕 괴를 의미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그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가늠해 보았다. 물론 한 가지 방법이 있었고, 그것은 당사자 모두를 잔인함과 자기 증오심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인간이 자신과 똑같은 인간을 먹고, 게다 가 그러기 위해서 그의 목숨을 빼앗기까지 하는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그 런 극적 상황이 끝나버 렸지만,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 선원들은 최악의 상 황까지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제비뽑기 같은 것은 제쳐놓은 채, 다짜고짜 가장 약한 자에게 덤벼드는(그래서 말하자면 그롤 뜯어먹는) 상황 말이다. 에식스 호의 이야기를 우리는 인간성 파산선언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또한 이들에 대해서 깊은 이해심을 가질 수도 있다. 절망적이었던 선원들에 게 과연 어떤 질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굶주림이 금기보다 강했다는 점을? 소위 문명화된 규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생존투쟁에 이 선원들이 불가피 하게 맞닥뜨렸다는 사실을? 그들이 불행 속에서 과연 어느 정도나 갈 데까 지 갈 수 있는지를 찾아내 려고 했다는 점을? 그들은 혹시 동물적 이었을지는 몰라도, 그 어느 순간에도 동물이 되었던 적은 없었다. 그건 그들이 잔인해 서가 아니라一동물은 결코 잔인하지 않다一인간에게는 모두 동물적 본성, 즉 태곳적부터의 위기관리 프로그램이란 것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고래 라도 한 마리 때려잡아서 그 사람들이 허기를 가라앉힐 수 있었더라면, 그 때문에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래서 서로 상대방의 눈을 더는 쳐다볼 수가 없었다.



수십 년 전부터 포경업에 대해서는 생태학과 윤리라는 맥락에서 논쟁이 벌어져 왔다. 이때 항상 등장하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인간이 동물들을 마 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고래가 과연 동물이냐는 질문이다. 우 리는 일반적인 타협을 통해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을 이제는 포기해 야 한다. 포획하려는 대상이 어느 정도나 발전된 종인가, 그러니까 우리에게 녀석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보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의혹을 헤아려 보는 도리 밖에 다른 방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별로 만족스런 것은 아니 다. 왜냐하면 범고래는 철학 논문을 쓰고 로켓장치를 설계하는 우리보다 사 실상 지능이 더 높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녀석이 좀더 인간적이게 되는 건 아니고 녀석은 그냥 범고래일 뿐이다. 녀석들이 우리가 가진 가치들을 함 께 나눠갖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발전사를 조건으로 하는 윤리에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정확히 여기에 문제가 있다. 


어느 종이 우리의 가치 테두리를 뛰어넘어 있는 한, 우리 인간은 어쩌면 그들의 지능이나 세련됨을 평가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고도의 지능을 가진 어떤 외계 인의 문화에서라면 죽은 종족을 먹고 심지어는 자신의 자녀까지도 먹는 것 을 진보적이면서 고귀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행동이 공감의 표 현 혹은 존경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우리 인간의 반응은 몰이해일 테고, 아마 역겨움도 느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어떤 가치 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치의 결핍만을 인식할지도 모른다. 이러 한 행위의 귀결이 어떤지는 식민지 정책의 연대기가 잘 보여준다. 소위 ‘야 만인들’ 에게 저들의 생활방식을 주입시키던 짓거리가 한두 번만으로 그치 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처음 페리 로단 시리즈(Peny-Rhodan-I-Iefi) 접했던 이래로 나는 외계의 생명체가 지구에 도착하는 것을 보게 되기를 바랐다. 그런 만큼 나는 그 일이 재앙으로 끝나버 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인간은 우 리의 유전자에 들어 있지 않은 척도를 기준으로 하여 지능, 의식, 감정을 정 리할 능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