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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하면서 길쭉한 주둥이

뾰족하면서 길쭉한 주둥이


놈은 안점(Augenfleck)이라는 것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코뿔나비고기는 그 이름이 나타내주듯이 어두운 색깔이 나는 뾰족하면서 길쭉한 주둥이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눈도 갈색이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시 각 상으로야 놈의 몸이 시작되는 곳은 아가미 뒤쪽부터가 맞지만, 거기부터 는 그야말로 샛노란 색깔이다. 게다가 몸통의 끝에는 새까만 반점 하나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얼핏 보면 이곳이 머리 부분이라고 믿게끔 생긴 것이 다. 이런 위장술은 네눈박이 나비고기(Schrnetterlingsfisch)의 치장에도 쓰 인다. 녀석의 관자놀이 위쪽으로는 눈에서부터 이어지는 어두운 빛깔의 줄 이 하나 나 있어서, 눈은 그것과 함께 가뭇없이 사라져버리는 꼴이다. 


그 대 신 녀석의 후미 부위가 가짜 눈구멍을 통해 세상을 응시한다. 또 육돈바리 (Mirakelbarsche?이)라는 놈은 구멍을 찾아들어가 숨곤 하는 녀석인데, 녀석 은 거기서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한다. 위험이 닥치면 녀석은 머리를 앞으로 들이밀고 꼬리만 빼꼼히 내다보는 시늉을 하게 된다. 녀석이 꼬리만 내놨다고? 그 소리를 듣더니 꼬마 프리츠가 목청껏 웃음을 터뜨린다! 대체 얼마나 우둔하면 그런담? 꼭 꼬맹이 프리츠가 아니더라도 그 또래의 어린이이라면 눈에 안 보이도록 돌아서버 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 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육돈바리도 틀림없이 제 정신이 아닐 만큼 경황이 없 어서 뒤꽁무니를 해류 속에 놔두었을 게다. 



녀석, 궁둥이가 붙잡히겠네! 하지만 다른 땐 그리도 영리하던 아이가 이번에는 틀렸다. 왜냐하면 육돈바리 의 꼬리는 포식 물고기의 두개골을 쏙 빼닮은 것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구멍 속에 있는 녀석 편에서 공격자에게 탐욕스런 눈길을 보낸다고 생각되니까 공격자는 돌연 태도를 싹 바꾸게 되는 것이다. 안점을 가만히 살펴보노라면 그것은우리 진화 양의 천재적인 발명품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 를 겨냥한 공격은 물고기들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위험스런 사태가 될 테니까 말이다. 놈의 모든 감각은 순간적으로 무력해지고 만다. 그렇더라도 곰치라 면 찢어진 꼬리나마 한 조각쯤은 챙 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고도 경험 중에 생긴 일로 여기며 벗어나야 할 것이다.


산호초의 풍기는 험악하기 이를 데가 없다. 양쥐돔 녀석들은 다수의 종이 꼬리 말단부위에 맵시 있게 생긴 두 개의 뾰족한끄트머리를 지닌다. 그걸 가 지고 결코 장난을 쳐서는 안 되는데, 양쥐돔이 그걸로 따귀를 때리듯 후려치 기라도 하면 그것이 날카로운 메스처 럼 깊은 상처를 내놓기 십상이라고 밝혀 졌기 때문이다. 거북복(Kofferfische)252)은 두터운 갑옷으로 무장을 갖추고 있 으며 참복과(Kugeinsche)253) 녀석들은 잔뜩 물을 퍼 마시고는 위협적으로 부 풀어 오른다. 다른 녀석들도 보이지 않는 점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환경과 융화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울퉁불퉁하게 생긴 쑥치과(Steinfische)%9녀석 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물고기는 녀석이 쏜 맹독성의 가시가 콧잔등에 꽂혀 있는데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약하자면, 모두가 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것이 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극히 정당한 일이기도 하다.


그럴 경우가 아니라면 녀석들은 헬스클럽에 가고는 한다. 거기서는 예절 바르게 처신하면서 심지어 장사진을 치기도 한다. 청소고 기와 청소새우들이 이문이 남는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산호초 공동체가 살 아 있는 한 그들은 호황을 맞는다. 방금 능성어 두 마리와 대형 가오리 한 마 리가 당도했고, 흰지느러미암초상어(WeiBspiizenhai)255)도 미적미적 접근해 오지만 아직 확실하게 결단을 내리지는 못한 모양이다. 조그마한 청소고기들은 그러는 동안 주의를 기울이느라 이상야릇한 춤동작을 추어 보인다. 청 소를 하는 장소에서는 활발한 경합이 벌어지면서 광고와 마케팅도 여기서는 주된 항목으로 여겨진다. 맨 먼저 능성어가 명령에 순종하듯 얌전하게 아가 리를 벌리는 걸 보니까 버둥거리는 동작 같은 것도 효과가 있는 셈이다. 이번 에는 아무런 술수도 없다. 이미 서로가* 말을 맞춘 것처럼 청소 장소에서는 치 과의사나 미용사들도 잡혀 먹히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지배한다. 



그렇게 되 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의식이 필요하다. 청소새우는 고객이 수동적인 자세를 보이며 닫고 있던 아가리를 벌림으로써 규칙을 준수하겠다는 신호를 보낼 경우에야 비로소 보호를 받고 있던 구멍에서 나온다. 그래야만 고객도 작업 을 받게 된다. 그러나'어떻게 한단 말인가! 고객은 이빨 청소를 받게 될 뿐만 이 아니라 죽어버 린 피부의 박핀이나 균류와 기생충까지도 청소부가 먹어치 우게 된다. 특히 이 후자의 것들은 새우의 전문분야여서 예리한 가위 발로 심 지어는 골칫거리로 자라난 것들까지도 수술을 해서 제거해준다. 양쥐돔 녀 석들도 번창하는 서비스업 분야에 참가한다. 산호초 한 구간을 더 가자 녀석 들의 일단이 청소로 손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나이가 많은 대형 바다거북 한 분이 자신을 내맡긴 채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양쥐돔 의사들 이 거북 등에 무성하게 자리한 바닷말들을 떨어낸다. 암초상어는 오히려 효 율적으로 먹이찌꺼기를 치워줄 수 있는 나비고기들에게 자신의 이빨을 맡긴 다. 그 상어가 나비고기를 먹어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은 놈 에게 해가 될 테니까 말이다. 만약 먹어치우기라도 한다면, 그건 제 칫솔을 삼키는 격이라고나 할 것이다.


그렇게 공존이 잘 이루어진다니, 정말 그건 기적이 아닌가?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아무도 다른 녀석들에게 우정과 같은 감정을 펼쳐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 일체는 산호초에 있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원칙의 표현이다. 바로 공생관계라는 것이다.공생의 공동체에서는 끊임없이 주고받는 일만 일어난다. 그러면서 쌍방이 모두 거기서 이득을 취한다. 청소부들이 그렇듯 호황을 맞는다는 것은 따지 고 보면 훨씬 불편한 형태의 목적을 앞세운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기생자들은 공생자들과는 반대가 되는 이기주의적인 녀석들이다. 그런 놈들은 주는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숙주를 덮쳐서는 극도의 약탈행위를 일 삼는다. 그럴 경우 기생자는 점점 더 잘 살게 되고 숙주는 점점 더 열악한 상 황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기식을 하면서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녀석들 도 있다. 빨판상어(SchifEhalterF* 같은 녀석이 바로 그렇다. 녀석은 넓적한 머 리를 가진 우스꽝스런 물고기로 상어나 다른 대 형 어류에 흡착하여 함께 움 직여 다닌다. 기식자들은 얻는 대신으로 내주는 것은 없으나, 그렇다고 해를 입히는 일도 없다. 



사람들은 공생관계를 아주 호감이 가는 일종의 생활 공동 체라고 느끼게 될 테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은 우선 비좁은 공간에서 행해지 는 공동생활의 가장 발전된 형태이다. 그런 만큼 그것은 매우 다면적인 모습 으로 나타나 보이며 놀라운 결과를 수반하기도 한다.〈니모를 찾아서(Findet Nemo)〉25기에 나오는 작은 물고기는 말미잘 내부에 터를 잡고 사는데, 그래 서 이름도 흰동가리돔(AnemonenfischeF58)이라 불린다. 이 녀석은 독이 든 육식동물의 촉수들 사이에서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녀석이다. 말미잘은 녀석을 보호해주며 제 서식지역을 표시한다. 그 대신 작 은 물고기는 말미잘 주변에서 서성거리며 뜯어먹을 기회를 노리는 놈이 있 으면 아무에게라도 마구 달려든다.

서식지역은 산호초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풍요로움이 있는 곳이다. 그 런 서식처를 가지지 않는 녀석에게는 먹을 것도 없고 집이나 보호처도 없는셈이다. 산호초에 서식하는 동물들 중에서 무숙자로서 생계를 이어가는 녀 석들은 아주 적은 수의 동물뿐인데, 창살무늬양쥐돔(Gitier-DoktorfischF%이 그런 녀석이다. 


이 녀석은 식사를 위해 아무 곳이나 찾아들곤 하는데, 그러 고서도 허용이 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야릇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외가 규칙 을 확인시켜 주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가 결코 모든 것을 다 알아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이다. 이와 다른 경우라면 서식지역은 마치 몰려오는 훈 족(Hunnel] 맞서듯 방어를 행하고 순찰대를 둬서 그 안전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서식지역에서 보다 빈번하게 행해지는 일은 따로 있다 고 하더라도 말이다.점점 어스름이 깔리는 때가 되었다. 열대의 신속함을 보여주듯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아 가자 그림이 바뀐다. 15분 정도는 산호초도시가 마치 폐사한 동네처 럼 보인다.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것들이 사적인 공간으로 퇴각해버린 것이다. 모든 녀석들이 다 제 모퉁이나 틈새 속 혹은 바위처마 아래에 웅크리고 있으며, 몸 색깔도 살아남 으려는 희망으로 더 어둡게 바꾼 녀석들이 많다. 껍데기를 가진 복족류 (Gehduseschnecken)2方이는 오래오래 기어가 어린 코빼기를 꺼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물고기 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조금씩 피를 빨아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