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다 옳은 것들만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많은데 그것이 무조건 다 옳은 것들만은 아니다. 그 런데 우리가 아는 것은 많아도 너무 많이서 과부하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정 보를 얻게 된다. 이는 숙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더 적어지는 것 이다. 뉴스에 따르면 웬만한 클리핑 서비스(Ausschnittdienst)1"는 우리한테 실제로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얼빠진 듯 우리는 오늘의 쇼라 는 이름의 핍쇼(Peepshow), 즉 우리가 거기서 뭘 보았는지 알아차리기도 전 에 작은 문이 열렸다닫혀버 리는그런쇼를 돈을 내며 소비한다. 우리는매일 같이 이라크에 퍼부어지는 자동화된 폭탄을 보면서, 또 클로닝(Cloning)1" 논쟁이나 태풍 윌마(Wilma), 이란의 원자폭탄 프로그램이나 프랑스의 소 요사태는 물론이고 중국인이나 세네갈인, 프랑스인이나 아메리카인, 오씨 (Ossi)와 베씨(Wessi) 등등의 세계를 보면서 무슨 느낌을 갖는가? 우리는 뉴스를 빛의 속도로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생각으루.두. 빛 의 속도로 따라갈 수 있는가? 아니, 못 따라간다. 그런데도 점점 더 많은 뉴 스들이 생겨나고, 계속 더 많아지니 우리 골머리가 다 띵해질 정도이다. 그 런 가운데 실례지만 쓰나미란 것이 뭐냐고? 내가 그것을〈누가 백만장자가 될까?>185) 에서처럼 알아야만 할까? 그런 뭔가가 독일에 위협이 되기라도 하는가?
내가 자주 받는 질문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새록새록 화가 치밀기도 한 다. “당신은 그걸 어 떻게 미 리 장담할 수 있습니까?” 이 런 질문을 받을 때마 다 나는 뭔가를 예언한다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밝힌다. 나는 예언가 가 아닌 것이다. 나는 단지 우연히 쓰나미를 다룬 사람일 뿐으로, 다른 사람 들이 행글라이더 날리기나 화산활동, 혹은 누에치기 같은 분야에서 전문가 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한 가지는 맞는다. 바로 내가 당시에 자료를 더 많이 수집하게 되면 될수록, 내가 살아생전에도 메가쓰나미가 또 있을까 하 는 의문이 더 자주 생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것은 통계적으로 기습적인 것이었고, 그밖에도 지질학적으로는 일상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의 현 실이 내 이야기를 그처럼 신속하게 끌어들이 리라고는 나도 전혀 예상치 못 했었다.
질문 방식으로 인해 한 가지가 명백해졌다. 바로 우리는 우리의 지구를 이 해한다는 걸 잊어버 린다는 점이다. 누군가 다음 주에 비가 내린다고 예보를 했는데 진짜 내린다면 대개는 그에게 예언자의 재능이 있다고 간주하고 싶 을 것이다. 화산폭발과 그에 의해 야기된 거대 파도사이의 시간적 간격은사 실 강우와 강우 사이의 간격보다는 더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나 저 것이나 다 정상적인 것이다.
파탄을 가져온 그 사건 자체만큼이나 나를 경악케 한 일은 공식석상임에 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비비며 의아해 하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심지어 이른바 지식사회 안에서조차도 기본적인 세계이해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맞다. 광범위한 인 구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그런 생각이 스며든 적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인 류 역사의 대부분에 대해 수준 높은 지식을 가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전에는 있어본 적도 없는 교양을 쌓을 만한 기구들, 이를테면 100개가 넘는 TV채널이라든가 야간대학 및 인터넷과 같은 것을 배경으로 하고 본다면 기 침올 하며 떨고 있는 지구를 눈앞에 바라보는 일반의 당황스러워함은 그로 테스크한 느낌 이 들게 한다. 주의하고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당혹감에 대한 것이 아니다. 나는 해오지 않은 숙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예 우리는 우리의 몰지각함을 매일 넓혀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뉴스, 광고, 오락영화, 신문기사, 각종 자료들을 머리가 멍해질 정도 로까지 소비한다. 커다란 전체에 대한 시선은 사라져 가는데,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그에 대한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 만 들어놓은 정보 괴물, 곧 박학다식으로 돌출부위가 끊임없이 커져가기만 하 는 프랑켄슈타인 뒤편에서 숨쉴 사이도 없이 헐떡거린다. 그러면서도 우 리는 실제로 더 영리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좌절할 뿐이다. 그와 동시에 수상쩍은 태고시대에 대한 동경이 자라난다.
그때가 어땠는지는 당신도 알다 시피 우리가 동굴 속에 앉았을 때 겪어보았다. 모르겠다고? 아무 상관없다. 당신이 물려받은 유전자가 그걸 알고 있으니까. 기억대로라면 우리가 동굴 인간이었을 때는 본래 훨씬 더 행복했었다. 씨족을 이루는 성원이면 누구나 똑같은 것을 차츰차츰 알 수 있었고 할 수 있었으며, 다만 따로 접촉할 수 있 는 것을 가진 샤먼만이 좀더 많은 것을 알 뿐이었다. 저주받은 진보가 우리를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아마 모든 것이 그처럼 근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갑 자기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바로 전문가들로서, 이들은一점점 더 영리해지면서一자신의 지식을 전달하 는 성향을 덜 나타내게 되었고, 반면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전문가들이 아 는 것에 대해 점점 더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또 그들에게 점점 더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어떤지는 당신도 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매일같이 행성 전체 가 자유로운 집처 럼 제공되고 있으며, 우리는 의당 그 과거와 미 래를 알아야 하고 온갖 형식을 지닌 기술의 진보 또한 자신의 일처럼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멍청한 것은 우리 유전인자의 근본에 있어서 우리는 여전히 동 굴인간이라는 점이다. 단지 지금은 우리가 온라인 접근이 가능한 동굴에 살 고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이 점이 그 자체로는 그리 나쁜 것은 아닐 것이 며 우리도 하여간 전문가들에게 최소한으로 기댈 수는 있을 것이다. 마치 예 전에 그랬던 것처 럼 말이다. 동굴인간은 더 이상 모를 때면 샤먼에게로 달려 갔고 그는 그 일을 가지고 신들과 담판을 벌였다. 오늘날에도 사실 샤먼들이 들끓고 있어서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모두 다 하나씩 샤먼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