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지성의 특징
우리는 우리와 다른 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기껏 생각하는 것이란, 정체 모를 그것이 어쩌면 배울 점들을 훨씬 더 많이 가지 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정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외계 생명체나 범고래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찾아내려 하 는 한, 우리는 그들 누구와도 결코 가까워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의당 인 간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은 동시에 차별화하여 볼 줄 알고, 책임성 있게 행동하며 관용과 동정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느낄 줄 아는 진정한 지성의 특징인 것이다. 비록 어 떤 가치를 실감 있게 체험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이러한 지성에 속한다.
외과의사나 뇌 연구가는 동물들의 두개골을 볼 수는 있지만 그들은 실제로 고래의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범고래가 뭘 느 끼는지는 결코 체험하지 못할 것이다.우리에게 남은 건 차근차근 검토해보는 것이다. 우리가 대면한 상대가 비 록 우리한테 낯설기는 해도, 고도의 지능을 갖추고 세련된, 어쩌면 훨씬 우 월한 종족은 아닌가? 이는 언젠가 다른 행성으로 우리가 여행을 하게 될 때 물어볼 질문이기도 하다. 지구에선 다음과 같이 물어야겠다. 우리 앞에 있는 동물은 이성적인 기준으로 보아 사냥이 허락되는 동물인가? 또는 그 종은 어느 정도 세련됨에 도달해 있어서 그들 자신의 환경이나 자신들 스스로에 대해서 성찰할 만큼, 그리고 그들이 사냥당하는 것을 의식해서 알고 있을 만 큼 진보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종은 어느 단계의 인식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두 번째로는, 늘 행하는 우리의 결정을 통해서 우리는 지구라는 행 성의 전체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끼치고 있는 것일까?다르게 물어보자. 도대체 고래는 뭣 때문에 좋은 것일까? 정적인 면을 제쳐놓고 보면 우선 고래들은 생태학적 요인이다. 그들은 중 요한 기능들을 수행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화 양이 그런 거대한 녀석을 만들 어내느라 애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가지의 고래 종류를 나는 이미 간단 히 소개했다. 즉 긴수염고래과의 본보기로 흑둥고래 및 향유고래를 소개했다. 오늘날 단순하게 ‘고래’ 라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때때로 전혀 상이한 종류의 많은 고래들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다. 참고래들과 작은흑 고래(Zwergglattwale),짜} 그리고 긴수염고래과의 고래들은 수염고래아목에 속하는데, 이들은 이빨 대신에 각질의 커튼 같이 생긴 것, 이른바 ‘수염’이란 것을 가지고 있어서 이걸로 바닷물에서 작은 생물들이나 물고기들을 걸러먹 는다. 긴수염고래과와는 반대로 흑고래과는 그들의 목 주머니를 공기로 채 워 부풀릴 수가 없다. 그 대신 그들은 마치 강력한 청소기처럼 아가리를 벌리 고 바다 속을 천천히 유영해 다닌다. 북대서양참고래와 북태평양참고래,285} 북극고래 그리고 남방긴수염고래가 그들에 속한다.
흑고래과와 긴수염고래 과 사이쯤에 두 종류의 특징을 모두 내보이며 해변근처의 바닥들을 모조리 뜯어먹는 귀신고래과가 자리 잡고 있다. 수염고래류는 바다에서 걸러 먹는 대형동물로 거의 모두가 몸집이 거구 다. 대왕고래는 길이가 약 33미터나 나간 기록을 가지고 있어서, 명실상부하 게 지구에 사는 가장 큰 동물이다. 혹등고래란 녀석은 노래를 제법 잘 부를 줄 알기에 오래 전부터 “방앗간집 청년은 방랑을 좋아한다네”그86)라며 훙얼 거리곤 했는데, 그러다가 대형고래의 주기적인 이동이라는 것을 생각해내게 되었다. 실제로 수염고래류는 반더포겔 회원(Wandewogel)처럼 각별한 녀석들이라 할 만하다.
여름이면 이들이 북극과 남극 수역을 찾아가 그곳에 서 배를 잔뜩 채우고 가을에는 다시 적도 방향으로 옮겨가니까 말이다. 바하 칼리포르니아<Baja California^88)와 하와이의 바다는 그들이 좋아하는 짝짓기 장소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새끼를 낳고, 부모들은 이 새끼를 데리고 추 운 곳으로 계속 이동한다. 그 여행은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왜냐하면 도중에 는 이빨고래들이 매복하여 귀신고래나 혹등고래의 어린 새끼들이 다가오기 를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수영의 세계 챔피언은 귀신고래다. 선천적 = 아주 빠른 녀석은 아니지만 하루에 보여줄 수 있는 지구력으로는 가장 막강한 녀석인 것이다. 녀석의 특성은 외형에 있지 않다. 외형으로보자면 다른 고래들이 훨씬 흥미 롭다. 귀신고래는 흑둥고래처럼 근사하게 생긴 아주 기다란 플리퍼를 흔들 거리는 것도 아니고(가슴지느러미를플리퍼라고부름), 14미터 길이의 체구에 대 왕고래만큼 힘이 세지도 않으며 남방긴수염고래처럼 기이한 두개골 구조에 서 비롯되는 짓도 하지 못한다.
귀신고래는 연한 은회색에다 스코틀랜드의 성 담벼락처럼 얼룩무늬가 나 있으며, 기생생물들로 뒤덮여 있어서 사람들 에게 오히려 성을 잘 낼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런 점으로 녀석을 나 보브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귀신고래만큼 몸에 기생하는 이나 따개비들이 극성을 부리는 데 고통을 받는 고래 종도 없다. 다 자란 어떤 귀신고래한테서 는 기생생물들이 200킬로그램까지나 되도록 퍼져 있기도 했다. 살짝 구부러 진 머 리는 비교적 작고 뾰족하며 , 플리퍼는 좁다란 노의 모양으로 생겼다. 뚱한 표정을 차치하고 보면 그러나 귀신고래는 사람들과 접촉할 때면 거 의 매번 먼저 다가오며 호기심을 보이고 사랑스러운 편이다. 고래 관찰하기 (Whale-Watching) 때는 시끄럽게 하지 않으면서 녀석들에게 다가가면, 아주 가까이 에서 직접 보는 것이 가능하다. 종종 고래가 아주 가까이 찾아와서 사 람들이 손만 뻗으면 이 거대한 둥치의 등짝을 만질 수도 있을 정도다. 관찰자 에게 부딪치지 않도록 고래가 신경을 쓰는 것을 보는 것은 애처로울 정도이 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북미지역의 포경업자들이 귀신고래에게 전혀 다른 느낌을 풍기는 ‘악마 물고기(Devilfish)’란 이름을 붙여준 것은 놀랍도록 이상 한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평온함은 때로 무서운 일들을 가장하기도 하기 때 문이다. 녀석들은 새끼가 공격을 당하기라도 하면 그 공격자를 마구 위협해 대며 괴롭힌다. 악마처 럼 분노하며一이름이 곧 암시다(nomen est omen)—녀 석들은 새끼를 방어한다. 포경업이 기계화되기 이전에는 종종 그들이 승리 자였으며, 그럴 경우 남는 것이라곤 박살난 배와 물에 흠뻑 젖은 작살잡이들 뿐이었다. 예전 고래잡이에 낭만 같은 뭔가가 있어 인간과 야수가 눈과 눈을 마주하기도 했던 시절엔 그 정도의 일이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현대 포경업 자와의 싸움은 결코 싸움이랄 수도 없다. 사람은 아무도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고, 단지 고래들만 그 싸움에서 죽을 뿐이다. 그러나 귀신고래는 원래 잘 흥분하지 않는 우리 시대의 이웃과 같은 녀석 들이다. 그들은 크릴새우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 특히 몇백만 마리씩 얕은 해변 수역의 바닥에 서식하는 길고 가는 벌레인 오누피스 엘레간스기를 좋아한다.
대개 녀석들은 해변 가까이에 머무르기를 좋아 한다. 해저 120미터 아래에서 그들을 발견하는 일은 좀처 럼 없다. 한 번에 엄 청난 양을 꿀꺽 삼키거나 또는 살아 있는 준설기처 럼 바다 밑을 샅샅이 파헤 쳐대는 수염고래들과는 반대로, 녀석들은 몸을 좌우로 돌리며 진흙 속을 포 복하면서 이 진흙과 거기에 사는 것들을 함께 빨아들여 먹는데, 이러는 동안 넓은 고랑과 길게 이어지는 침전물의 구름을 남겨 놓는다. 그들은 주로 둘에 서 넷씩 작은 그룹을 지어 다니지만, 혼자 다니기도 또한 좋아한다.
녀석들 의 생활방식은 너무나도 여유로운 편이어서, 때로 그들이 먹으면서 잔다는 느낌을 줄 정도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순간에도 소스라치듯 갑자기 저돌적 인 점프를 하면서 몸을 완전히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거나 머 리를 물 밖으로 내밀어 주위를 점검하는 행동을 보인다. 그러고 나서 만일 녀석들이 방랑의 길을 떠나기 시작하여 그 모습을 지켜보기라도 한다면, 그저 경의를 표할 도 리밖에는 없을 것이다. 다른 어떤 동물도 귀신고래처럼 그렇게 엄청난 거리 를 이동하지는 않는다. 완전히 성장한 이 회색 동물이 이동하는 거리는 매년 2만 킬로미터까지 되는 것이다!